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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조봉현 - 입법투쟁기(2) 휠체어로 계단을 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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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6-14 15:20 조회2,5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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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봉현 회원은 장애인법연구회 회원으로서 지체장애인이며, 현재 세무서 과장입니다. 수십 년간 장애인 인권운동에도 앞장서 오면서 정부, 언론사 등으로부터 사회공헌대상 등 각종 표창을 수상하였고, 장애인 권리를 위한 각종 입법 활동에도 앞장서 법제처로부터 2015년 최우수국민법제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조봉현 회원이 편의증진법 시행령 개정을 위하여 활동한 후기를 보내주셔서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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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로 계단을 올라가라?

 

장애인법연구회 조봉현

 

몇 달 전에 법제처에서 국민행복 법령 만들기 아이디어 공모전이 있었다. 여기에 나는 “장애인등 이동약자의 층간이동권 보장을 위한 제안”을 제출하여, 채택통지를 받았다. 그 주요 내용은 장애인편의증진법(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 관련 법령을 총칭하며, 편의상 여기서는“장편법”이라고도 표시함) 시행령에 규정된 장애인 등의 이동편의를 위한 대상시설별 편의시설 종류 및 설치기준에 2층 이상의 공공건물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규정을 만들도록 하는데 나는 내가 12년간이나 외롭게 투쟁해 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실마리가 풀리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도 무려 2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의 장벽이 너무 많다. 장애인편의증진법에는 장애인들이 이동하고 생활하는데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항들이 규정되어 있다. 장애인에게는 어쩌면 편의시설이 아니라 절박한 생존시설이다. 이중에서 공공건물의 이동편의에 대하여 대상시설별 편의시설 종류 및 설치기준을 명시한 시행령 별표 2에는 아래와 같이 규정되어 있다.


3.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가. 일반사항

    (6) 장애인 등의 통행이 가능한 계단,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리프트, 경사로 또는 승강장.

     (가) 장애인 등이 건축물의 1개 층에서 다른 층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그 이용에 편리한 구조로 계단을 설치하거나 장애인용승강기,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 리프트 또는 경사로를 1대 또는 1곳 이상을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장애인등이 이용하는 시설이 1층에만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위 규정을 보면 2개 층 이상의 공공건물에 대하여 장애인이 다른 층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이나 승강기 중 하나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2층 이상 공공건물은 계단과 승강기중 하나만 설치해도 된다”. 이게 무슨 장애인 편의시설인가? 지체장애인에게 있어서 계단은 공포에 대상이다. 2층 이상의 건물에 계단의 설치는 굳이 법 규정이 없더라도 필수적으로 설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명시할 필요도 없고, 승강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장애인 이용 시설이 1층에만 있는 경우에는 그것마저 제외해도 된다는 규정은 또 무슨 말인가? 장애인이 공공건물에서 근무할 수도 있는데, 그때도 2층 이상을 올라가지 마라? 


내가 이 말도 안되는 조항을 개정하여 달라고 입법투쟁을 시작한 것은 2005년도이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여 이 법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에 서면으로 질의를 했는데, 역시 계단이나 승강기중 하나만 설치하도록 규정된 것이 맞다는 회신이 왔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단계로 그 말도 안되는 규정을 고쳐달라고 건의서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현행 규정에서 계단은 편의시설이 될 수 없고, 당연히 설치되는 것이니 장편법에서는 “계단 또는”이라는 말을 빼고 승강기만 의무화 하고, 단서규정도 삭제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재차 진정서를 내고서야 답장(재활지원과-3078, 2005.9.30.)을 받았는데, 답장은 더욱 기가 막혔다. 5층 이하인 건축물에 승강기와 계단을 모두 의무화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규제영향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정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 상식적으로 규제영향 평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에서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사항을 명시하는 법령을 제정할 경우 국민에게 함부로 규제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제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규제영향 평가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에 질의를 하였다. 그랬더니 국무조정실을 경유하여 다음과 같은 답장(2005.10.26.자)이 왔다.


행정자치부에서 국무조정실로 이송된 문의사항에 대한 답변입니다.

행정규제 기본법 제2조에 의하면 행정규제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규제대상인 국민은 국가기관을 제외한 자연인(법인 포함)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국가기관의 건물에 승강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규제하는 것이므로 행정규제기본법상 행정규제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귀하가 문의하신 규제영향분석은 필요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이 회신을 첨부하여 다시 보건복지부로 장편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탄원서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한심한 회신을 보내왔다.


귀하께서 주신 의견처럼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단 또는 승강기라는 항목을 분리적용하는 것이 장애인의 수직이동 보장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사항임이 분명합니다만, … 현실적으로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나는 일반 건물에 대해서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건물주인 공공건물에 대해서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서 정부를 상대하는 것보다 전문기관이나 단체와 공조를 하고 싶어서 장애인권익연구기관을 방문하여 대표에게 나의 의견과 그동안 정부와 주고받은 각종 문서를 넘겨주었다. 그분 역시 나의 설명을 듣고 이법의 독소조항을 인정하였지만 정부를 상대로 하는 법 개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또 모든 자료를 챙겨서 아는 장애인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그 국회의원은 바빠서 그랬는지 설명을 자세히 들으려 하지 않고, 보좌관을 부르더니 잘 얘기해보라고만 했는데, 그 국회의원도 그 보좌관도 그 이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장애인단체나 장애인 인권운동을 한다는 시민단체에도 찾아다녔지만 문제점을 공감하면서도 역시나 입법추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보건복지부에 몇 번 더 진정서를 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공공기관에 승강기를 설치하지 아니하여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불편을 준다면 이는 장애인 차별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시정권고 사례도 몇차례 나왔다[국가인권위원회 06진차50(2006.1.10.), 10진정0371600(2011.8.22.), 10진정0140200(2011.4.26.) 등]. 금년 4월에는 국가인권위가 주관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가 있었는데, 마침 국가 인권위원회로부터 토론자로 참석해달라는 제의가 있어 거기에 참여했을 때도 그러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지만 그 토론회 역시 1회용 행사의 성격이 짙었다.  


이렇게 장애인 인권을 침해를 막기 위한 외로운 입법투쟁은 무려 12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금년 3월경에 국민참여입법시스템을 검색하던 중 법제처에서 국민행복법령만들기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는 공고를 보고 마지막 기대를 걸면서 입법제안서를 제출하였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